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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대중문화

추리소설 감상 - 산마처럼 비웃는 것 (저자 : 미쓰다 신조, 역자 : 권영주)

 

흰색 글씨로 스포일러 가렸습니다.






줄거리 :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내놓은 자식 취급을 당하며 도쿄에서 선생을 하던 고키 노부요시는 집안 전통의 성인 참배 의식을 하기 위해 고향 하도로 내려가게 된다. 그런데 그 참배 의식의 행선지는 바로 산마 山魔 가 출현한다는 괴상쩍은 산이었다. 참배 의식을 위해 산에 들어간 노부요시는 연달아 기괴한 체험을 하게 되고, 외진 곳에서 떨어져 사는 수상쩍은 일가족과 조우하게 되어 그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런데 다음날 노부요시가 일어났을 때 이 일가족은 집의 문이 잠겨진 상황에서 그 모습을 감추고 증발해 버린다! 더군다나 아무도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못 봤던 상황. 노부요시는 도망치듯이 도쿄로 돌아오게 되고, 이런 노부요시의 체험을 듣게 된 괴기 소설 작가 도조 겐야는 일가족 증발의 의문을 풀기 위해 직접 하도로 가게 되지만 그것은 바로 연쇄 살인 사건의 시발점이었으니......

- 국내에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으로 한 번 소개된 바 있는 미쓰다 신조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제가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건 이 두개 밖에 없지만, 소개글 등을 참조하면 주로 지방의 괴담 같은 걸 소재로 해서 글을 쓰는 작가인 것 같더군요. 괴이를 주 소재로 삼고 민속학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교고쿠 나쓰히코와 비슷한데요,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과 다른 점은 우선 현학적인 면이 덜하다는 점, 그리고 트릭이나 범인 찾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다 본격 추리 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보다는 문학성이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지요. -_-;

- 사실 전작 (?) 이라 할 수 있는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에는 주인공이자 탐정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도조 겐야가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비해, 이 작품에서는 고키 노부요시의 회상 부문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활약하고 있습니다만...... 이 양반은 아쉽게도 이 분야의 대선배라 할 수 있는 긴다이치 코스케과로군요. (...) 마지막 결말에서야 그 천재성이 빛나기는 합니다만 그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활약을 못해줘서 희생자수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납니다. 스포일러라서 정확한 사람 수는 말을 못하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화끈하게 죽이는 본격 미스터리 작품은 꽤나 오랜만에 봅니다. 캐릭터 자체는 뭐 특별한 게 없는 사람 좋은 작가, 탐정 캐릭터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희대의 명탐정이란 특이한 설정이 있더군요. 아들인 도조 겐야는 아버지에 대해 열등감이 약간 섞인,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는데 작품 내내 이 사실이 언급되는 게 독특하다면 독특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많은 탐정 캐릭터들 중에서 이런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캐릭터는 잘 없죠.

-  아무튼 추리 소설의 측면으로서 보자면 이 작품은 그야말로 폭풍 같은 미스 디렉팅의 난무. 그리고 작품 결말 부분에서의 반전의 연속입니다. 보통은 탐정 캐릭터가 차근차근 논증해 가며 진상을 밝히거나, 아니면 미스 디렉팅에서는 무시하는 게 보통인데, 이 작품에서는 탐정 캐릭터가 1. 이런 방법이 있다. -> 2. 그런데 아닌 것 같으니까 이런 방법이겠지. -> 3. 그런데 실은 이것도 아님. 진실은 이거임... 라는 식으로 사람을 아주 롤코에 태우더군요. (...) 꽤나 특이한 방식이라서 재밌기는 했는데,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조악함에서 왜 다른 작가들이 이런 방식을 사용 안 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_-; 복선과 단서는 충분하다고 하기에는...... 음 미묘한 것이 굉장히 사소한 부분에서 주어지는 게 어떻게 보면 좀 많이 쪼잔합니다.(...) 저처럼 책을 훅훅 넘기면서 보거나, 텀을 두고 읽어서 앞부분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절대 진상을 추리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단서가 꽤나 많은 편인데 문제는 작품의 미스터리들이 서로 겹겹히 얽혀 있는 상황이라서, 상당히 복잡한 편이라 독자의 입장에서 페어한 플레이였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결국 작품의 궁극적인 대답이라 할 수 있는 게 고키 노부요시 = 단부 = 진범 의 설이지만, 문제는 노부요시랑 = 단부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가 너무나도 작다는 데 있습니다. 가뜩이나 도쿄에 있는 고키 노부요시 = 실은 다카시 의 진실을 추정할 수 있는 명백한 단서가 카레 라이스에 나오는 장아찌라는 3번에 나눠서 나온 단서 하나 뿐이라서 알리바이를 파훼하기가 어려운데 말입니다. 그나마 면피용으로 작가가 단부의 이름에 단서를 집어 넣은 것 같지만, 한국 독자가 그걸 눈치 채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뿐더러 일본 독자도 그걸 눈치 챈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군요.

- 범인의 정체와는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범행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트릭 일가족 증발의 수수께끼 은 개인적으로 꽤나 참신하고 괜찮았습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가지토리가의 당주 리키히라가 자기와 사이가 안 좋은 집안의 당주 다쓰지의 얼굴을 모르고 지냈다는 건 억지라고 생각하지만. -_-;  그 외에 마음에 드는 것은 범행의 동기. 섬뜩하면서도 제목의 의미가 잘 드러나 있더군요. 범인의 행동 심리를 반추해 보자면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오싹한 느낌도 들고...... 특히 학살 순간에서의 그 장면은 진상을 알고 난 뒤에 읽어도 완전 호러.; 지금 생각해 보면 서문이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  아무튼 전체적으로 괜찮은 소설이었습니다. 순수 추리 소설의 측면에서 보자면 비판 받을 부분도 있지만, 오싹한 공포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고, 본격의 요소와 괴이의 밸런스를 이렇게 잘 맞추는 작품이 드물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