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은 케릭터 게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게임 자체의 완성도를 차치하더라도 케릭터가 주제가 되는 게임이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으니까요. 배트맨이라는 만화 세계관에 나오는 독특하고 다양한 악역들, 그들과 배트맨이라는 케릭터 사이의 독특한 관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트맨이라는 히어로가 갖는 특수성(초능력은 없지만, 의지력이 뛰어나며, 하이테크 장비를 사용하는 과학수사에 능통하고, 무술의 달인이며, 동시에 공포를 무기로 사용하는)을 게임 플래이에 잘 녹여내었죠. 사실 저는 분량 문제만 제외한다면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은 더 이상 좋아질만한 구석이 없는 게임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캄 시티는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캄 시티는 아캄 어사일럼을 아캄 시티를 위한 프롤로그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더 좋아질 구석이 없었다고 생각되는 게임을 개선 발전시켜서 승화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아캄 시티는 충분히 올해의 게임 후보에 이름을 올릴만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불만사항이었던 분량문제도 아캄 시티에서는 이런저런 자잘한 요소들을 잔뜩 추가함으로서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배트맨의 팬이라면 마지막 엔딩 및 크레딧 장면에서 적어도 점수가 120% 늘어날 것이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2.
기본적으로 게임의 스토리 라인은 전작 아캄 어사일럼 사건 이후, 초범죄자들을 수감할만한 거대한 시설인 아캄 시티를 만들고 이에 대해서 브루스 웨인(=배트맨)이 반대운동을 펼치다가 잡혀가는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게임은 닥터 휴고 스트레인지의 강렬한 등장에서부터 조커, 펭귄, 미스터 프리즈, 할리퀸, 리들러 등등까지 다양한 초범죄자들과 배트맨 사이의 갈등을 그려냅니다. 물론 전작의 아캄 어사일럼과 비슷한 스토리 구도이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이번 아캄 시티의 스토리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전작의 이야기가 단순한 슈퍼 히어로물에 나올법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작은 배트맨의 딜레마(특히 휴고 스트레인지가 배트맨을 비꼬는 부분 및 몇몇 스포 요소들)와 케릭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전작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작의 아캄 어사일럼 자체도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었지만 이번작의 아캄 시티는 전작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작의 아캄 어사일럼은 단순한 정신병동이자 수용소였습니다. 물론 리들러 첼린지를 하다보면 수용소마다 초범죄자들의 흔적이 남아있긴했죠. 하지만 본작인 아캄 시티는 아예 초범죄자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으로 도시를 만들어냅니다. 펭귄의 수집욕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나, 투페이스의 법정, 조커가 제철소를 개조해서 만든 놀이공원 등등 전작과 비교하자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더욱 커지고 멋지게 변모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전작보다 넓어지기는 했지만, 소위 요즘 게임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소재인 오픈 월드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캄 시티라는 공간이 보여주는 내밀함은 왠만한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수 있죠. 또한 게임은 글라이딩과 강하, 그리고 배트클로 강화를 통한 장거리 이동을 추가함으로써 아캄 시티라는 넓은 공간을 속 시원하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새로 추가된 이동 방법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재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3.
제가 전작의 게임 플래이 방식을 페르시아의 왕자의 액션과 메탈기어 솔리드의 잠입이 섞였다고 평가하였으나, 이번작은 그냥 '아캄 시티'만의 고유한 게임 플래이 방식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작에서 훌륭한 부분은 갖고 오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넣으면서 밸런스를 맞췄다는 느낌. 일단 첫번째로 전투 부분은 도구의 추가 및 손쉬운 사용과 다양한 기술을 추가하면서 배트맨을 강화시켜주었으나, 동시에 콤보를 이어가는 판정이 상당히 까칠해졌고(전작은 두세방 헛손까지는 괜찮았으나, 이번작은 한방이라도 헛손을 치면 안됨) 적들도 다양한 종류와 무장을 하고 나오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이번작은 페르시아의 왕자라기 보다는 리듬 액션 게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기술을 집어넣고, 도구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덕분에 난이도는 올라갔지만, 동시에 게임에 깊이와 재미를 더 해주더군요.
무장한 적들과 싸우는 부분도 위와 비슷한데, 도구의 추가로 배트맨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적들도 엄청나게 똑똑해지고 사악해졌습니다. 몇몇가지 예를 들자면, 발각되었을 때 은신포인트(전작에서는 주로 가고일)에서 적의 시선을 교란하는 부분이 어려워졌고, 적들이 배트맨이 은신포인트를 쓴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은신포인트를 파괴(!)한다던가, 적이 은신포인트나 배수로 근처에 쓰러져있을때 그 근처도 같이 탐색(!)하는 등의 다양한 행동들이 있습니다. 또한 적들의 종류도 다양해지고(무려 탐정 모드를 방해하는 놈까지 나옵니다), 지뢰까지 깔리는 등 전작을 생각하고 플래이하다가는 문자 의미 그대로 훅가버리는 게 다반사입니다.
전작도 어려운 부분은 어려웠지만(타이탄+잡몹들이라던가, 혹은 은신포인트에 지뢰 설치한거라던가), 이번작은 어렵기는 하지만 동시에 도구나 기술이 많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작은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그래픽은 전반적으로 전작 수준, 또는 전작보다 조금 더 좋은 수준이라는 느낌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전작에 비해 맵스케일이 커지긴 커졌기 때문에 크게 불만사항은 없습니다. 오히려 맵 스케일이 커졌지만, 맵의 밀도나 게임의 내용물 자체는 전작 혹은 전작 이상이라는 느낌입니다. 처음 메인 스토리를 진행할 때는 잘 모르지만, 나중에 리들러 첼린지 할 때쯤 되면 맵 전체를 돌아보게 되는데 맵 구석 구석 마다 숨겨져 있는 퍼즐이나 수수깨끼, 다양한 요소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대단히 놀랍습니다. 또한 사운드 부분은 역시 출중. 성우 부분이 대단히 좋은데, 전작의 배트맨 성우인 케빈 콘로이의 열연이라든가 그리고 영원할거 같았던 마크 해밀턴의 조커 연기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점이 상당히 아쉬운 부분. 찰진 타격감이나 괜찮은 BGM은 전작인 아캄 어사일럼에서 많은 부분 계승하고 있습니다.
5.
결론적으로 아캄 시티는 어떤 리뷰에서 쳤던 드립이 딱 들어맞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이 게임을 리뷰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불과 이틀이었고, 나는 그동안 게임과 동시에 리뷰를 쓰면서 아캄 시티에 100점을 매겼다. 하지만 리뷰를 쓰고 난 뒤에 나는 아캄 시티 엔딩을 보았고, 그리고 나는 이 게임에 100점이 아니라 120점을 주었어야 했다고 후회하게 되었다."
올해의 GOTY를 아캄 시티가 휩쓸것이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는 어느정도 수긍할 수 밖에 없네요. 사실 아캄 어사일럼이 없었다면, 이건 작년 레데리 처럼 GOTY를 휩쓸어야 당연하겠지만 전작도 있고, 무엇보다 올해는 쟁쟁한 대작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캄 시티는 어떤 대작이 나오더라도 전혀 꿀릴것이 없는 엄청난 대작입니다.
아, 아캄 시티에 단점이 한가지 있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끝'이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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