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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대중문화

[罪惡業]헬레이저 3부작-지옥도





클라이브 바커는 스티븐 킹과 더불어서 세계적인 호러소설의 대가로 알려져있죠.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과 클라이브 바커 둘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둘의 전문 분야는 극명하게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하나의 대명제(예를 들어, 살렘스 롯 같은 경우에는 우리 마을에 흡혈귀가 왔어요 라든가, 셀 같은 경우에는 휴대폰 전화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든가)에 기초한 리얼리즘 소설쪽에 가깝습니다. 즉, 현실 그대로의 상황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보통의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가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클라이브 바커는 특이하게도 그런 점에서 스티븐 킹의 대척점에 있는 작가입니다.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에 있어서 공포란 피의 책 리뷰(http://leviathan.tistory.com/search/%ED%81%B4%EB%9D%BC%EC%9D%B4%EB%B8%8C%20%EB%B0%94%EC%BB%A4)에서도 다룬 것 처럼 일종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본질적으로 파고들면(제가 본 작품들에 의거하자면), 그의 소설에 있어 이야기 구조는 상당히 단순하고 쉬운 구조에 기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로헤드 렉스'의 경우 모성을 두려워하는 파괴적인 남자 괴물과 자식을 잃은 아버지 사이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또, '별빛, 섹스, 그리고 죽음'의 경우 죽은자들이 돌아와서 연극을 공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해서 제가 추론한 것은, 클라이브 바커 소설의 특징은 '동화적'이라는 것입니다. 클라이브 바커가 소설이든 영화든 간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야기 전반에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나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골적인 이야기를 클라이브 바커 특유의 지저분하면서도 원초적인 필체와 표현 안에 담아냄으로서 다른 호러 소설가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죠.


헬레이저도 이러한 클라이브 바커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소설 자체는 한국에 들어오지 않아서 원판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영화 자체가 클라이브 바커가 직접 연출을 맡았으니(?!) 원작과는 크게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헬레이저의 이야기는 단순 합니다. 쾌락주의자인 남자가 극상의 쾌락을 추구하려다가 지옥에 떨어진 뒤, 지옥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한때 내연의 관계였던 형의 아내이자 주인공의 양어머니를 꼬드기고....사실 이게 다입니다. 헬레이저 3부작 모두가 상당히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자랑하는데, 각각의 작품을 3줄 스토리로 요약하는 것이 가능한 정도니까요. 


그러나 헬레이저 삼부작의 특징(그리고 클라이브 바커 특징이기도 한)은 바로 묘사와 설정에 있습니다. 헬레이저의 간판 스타이자 80년대 호러 영화를 풍미한 핀헤드와 수도사란 케릭터들과 극상의 쾌락과 고통으로 가득찬 지옥이라는 특이한 설정들은 스티븐 킹 원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과 더불어서 호러 장르 수준을 한단계 올렸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헬레이저의 세계관에서 지옥이란 기존의 지옥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입니다. 1편 초반, 프랭크가 상자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장면이나 영화 내의 프랭크의 묘사를 보면 프랭크가 지옥에 가게 된 것은 그의 악행 때문이 아니라 그의 쾌락에 대한 '탐닉'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1편에서 수도사들이나 지옥에 다녀온 프랭크는 지옥을 '극상의 쾌락과 고통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으로 묘사를 하는데, 보통 악한 자를 벌하는 공간으로서 지옥을 묘사하는 기존 서브 컬처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헬레이저의 지옥관은 선악의 개념보다는 인간다움의 개념에 의해서 정의됩니다(제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죠) 고통과 쾌락, 이 두가지 상반된 개념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집착'이라는 것이죠. 가령, 극심한 고통은 사람을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에 대한 것에만 집착하게 만듭니다. 또한 극심한 쾌락은 그 쾌락 자체에만 빠지게 만들죠. 양쪽 다 인간으로부터 인간다움을 뺏어갑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그것에 몰입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게 만들죠. 특히 지옥에 직접 내려가는 2편의 경우, 이러한 지옥관을 제대로 보여주는 몇몇 장면이 있습니다. 2편에서 핵심 인물로 나온 의사가 수술용 드릴을 머리에 꽂고 쾌락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는 수도사가 되는 장면이나, 크리스티가 수도사들에게 그들이 예전에 사람이었다는 것을 설파하자 그들이 인간처럼 행동하는 부분, 그리고 3편 자체에서 잡은 대결 구도인 인간 핀헤드 vs 수도사 핀헤드 등에서도 추론할 수 있죠. 


이러한 독특한 세계관을 영화는 클라이브 바커의 전매 특허인 연출과 표현으로 완성됩니다. 특히 '수도사'라는 케릭터들은 호러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지옥에서 온 수도사나 헬레이저의 수도사 이미지를 딴 컨셉들을 주변에서 꽤 찾아볼 수 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어요. 베르세르크의 고드 헨드가 헬레이저의 수도사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죠. 이제는 연중되어 끝날 기미가 안보이는(.....) 프리스트 역시 수도사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작가가 직접 언급했구요. 하드코어 SM 포르노에나 나올법한 가죽 옷에 머리에 대못을 갖다 쳐박은 핀헤드의 이미지는 평론가 허지웅의 표현을 빌리자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충격적'입니다. 뭐 개인적으로 50년이 지나도 핀헤드의 이미지는 충격적일것 같지만요. 


수도사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직접 지옥에 내려가는 2편의 경우 회색빛 콘트리트 미로로 표현되는 지옥의 음울한 모습, 프랭크의 지옥에서 보여준 고깃덩어리들의 에로티시즘 등은 지금 보아도 놀라운 이미지의 향연입니다. 물론 80년대말 관점에서 상당히 진지한 특수효과였겠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상상력을 특수효과가 따라오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특히 2편의 경우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헬레이저 삼부작(4편 이후부터는 클라이브 바커가 참여 안해서 무효)은 대단한 작품입니다. 호러 영화의 팬이라면 꼭 보고 지나가야하는 성서 같은 작품이라 저는 단언 할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