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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대중문화

명탐정 코난 극장판 : 침묵의 15분 - 이건 이미 추리 만화가 아니야...



시놉시스 :

지난 4년 동안 오만불손한 행동으로 도의 행정을 망쳤으니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도지사 앞으로 익명의 협박 편지가 도착하고 그 후 대도심 한 복판에서의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코난의 기지로 폭파 15초를 남겨두고 대참사를 막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코난은 더 큰 참사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도지사 참석 예정인, 이전 5주년 기념식이 준비 되고 있는 북촌 마을을 찾아간다. 그 곳에서 만난 8년 만에 모인 북촌 마을 동창생 5명, 그들이 서로 얽혀있는 8년 전 뺑소니 교통 사고 등 수상한 과거의 사건들을 되짚어 가는 도중에 수수께끼 같은 설원 속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을 밝혀내기도 전에 북촌댐 폭파 테러라는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고, 코난은 다시 한 번 대 참사의 위기에 맞서게 되는데… (출처 : 네이버 영화 정보)

(이하 약한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코난 극장판은 비단 극장판만의 문제 뿐만 아니라, 명탐정 코난이란 시리즈가 봉착한 매너리즘의 문제를 모조리 응축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명탐정 코난이란 작품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요. 초창기의 '추리 만화' 였던 이 작품의 팬으로서 (그리고 아직까지 의무감으로 단행본을 사보고 있는 -_-;) 그야말로 최악의 전개... 바꿔 말하면 시리즈 자체를 좋아하시는 팬 여러분이라면 좋아할 만한 작품인지도.

- 명탐정 코난 시리즈가 장기화가 되면서 드러나는 변화는 '추리 만화' 에서 '추리' 파트가 갈수록 약화되면서 재미가 없어진다는 거겠죠.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70권이 넘게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니, 한 권에 대략 3~4개의 사건이 나오는 코난의 구조상 이미 사건이 최소 210개 이상이 나왔다는 얘기이니 소재가 떨어질래야 떨어지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상황. 
때문에 명탐정 코난은 사건이나 추리 그 자체의 재미보다는 독특한 탐정 캐릭터들과 그들을 둘러싼 캐릭터들의 관계,특히 남녀 캐릭터간의 러브 라인, 간간히 나오는 검은 조직의 떡밥, 혹은 괴도 키드 (...) 를 보는 재미로 보는 만화가 되어버렸죠. 많은 사람들이 우스게 소리로 얘기하는 '명탐정 코난은 이미 시트콤이다.' 란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불평할 수밖에 없는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최근 방향성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판매량을 기록해 주고 선데이란 잡지의 밥줄이 되어주는 모습을 보면 대다수의 독자들은 그런 걸 좋아하나 봅니다. 설마 전부 나같이 의무감에서 책을 사주는 호구겠어.

- 그런 방향성은 이번 극장판에도 여전해서, 가히 이 극장판에는 제대로 된 추리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범죄가 있고, 범인이 있고, 코난이 추리하는 장면도 나오기는 하지만 이 추리라는 게 어떤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추리한 게 아니라, 그냥 코난이 정황을 감으로 때려 맞추는 식. (...........) 원작에서는 어거지 구색 맞추기 식으로 넣어 놓는 부분까지 모조리 스킵하고 있더군요. 그렇다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사건 전개와 스토리의 재미가 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추리 자체가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거의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이기는 하지만 코난의 추리가 없어도 사건 해결에는 딱히 문제가 없는 전개입니다. -_-; 

- 개인적으로 가장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바로 범인의 동기 부분입니다. 중반부터 계속 떡밥을 던져줘서 눈치 채기는 했지만 설마 설마하는 마음에서 계속 보다가 마지막에 어이 상실. (...) 정말 가장 어이 없는 범인의 동기 BEST  들어갈 만합니다. 아마 대다수의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저 사단을 벌인 거였어?!' 란 생각을 하실 겁니다. 모든 것은 시리즈 역대 최고의 액션신을 만들기 위한 감독과 각본가 때문.

- 추리 파트 외의 부분들은 그냥 저냥 평이합니다. 딱 명탐정 코난이다. 라 할만한 요소들로 차 있습니다. 액션신은 제작진이 여러모로 기합을 줘서 만들 티가 났지만, 원래 코난이 액션신을 보려고 보는 만화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겠습니다만 코난 같은 어린애가 벽을 타 달리고 하늘을 붕붕 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오글거려 언밸런스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어린이 관객은 오히려 몰입하면서 보려나?

-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작품 전체에 흐르는 잔잔한 분위기와 눈 덮인 마을의 비주얼, 묘하게 코난과 붙어 있는 장면이 많은 하이바라 아가씨. (....) 그리고 의외로 어린이 탐정단 애들이 꽤나 비중 있게 나와서 작품 분위기와 전체적으로 어울려서 좋더군요. 원래는 어린이 탐정단 설정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재미도 없었는데 이번 극장판에서 애들이 귀엽고 훈훈하게 보인 건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가. -_-; 원래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얘들 또래였으나 작품이 계속되면서, 나의 나이는 신이치를 제낀 지 오래.(먼 산)

- 더빙판으로 봤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로컬라이징이였으나, 최악이었던 건 극장판 캐릭터들의 번안 이름이었습니다. 특히 남자 캐릭터들의 이름이 문제였는데 '히카와 쇼고 (氷川尚吾) / 오대오 ,  야마오 케이스케 (山尾渓介) / 신기루, 무토 타케히코 (武藤岳彦) / 소남우'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이름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건지. 사실 그냥 보기만 하면 별 문제 없어 보일지 모르는데 극장에서 직접 들으면 확 튑니다. 이 이름들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 사이에서 계속 웃음이 나오는 데 (특히 애들이), 심각한 장면에서도 분위기를 확 깨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 원래 코난 애니메이션 번안 이름이 성의 없고 장난스러운 게 많았으나 그래도 극장판에서까지 이런 것은 좀 문제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