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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대중문화

[罪惡業]The Thing(1982, 2011)-우리 중에 '그것'이 있어.




존 카펜터는 공포 영화팬들이면 적어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법한 감독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이라면 살인마 영화의 프로토타입이자 살인마 영화 붐의 시발점, 할로윈이란 영화의 감독이 바로 존 카펜터라는 사실만 아시면 됩니다. 엄밀하게는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감독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의 걸작들은 옛날에 많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존 카펜터의 영화는 '매드니스'(In the Mouse of Madness, 1994)였죠.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쥬라기 공원의 샘 닐(박사 있잖아요, 그)[각주:1]이 나와서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는 소설을 쓴 소설가의 이야기였는데, 나중에 나이들어 찾아보니 존 카펜터 영화 치고는 별로였다 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는 어렸을 때, 쫄면서 봤는데 말이죠.[각주:2] 하지만 요즘은 마스터즈 오브 호러에 단편 영화를 두편 냈는데[각주:3] 상당히 괜찮은 평가를 듣고 있더군요. 


각설하고, 존 카펜터의 The Thing[각주:4]은 소위 인구에 회자되는 비운의 명작입니다. 사실, 저래 보여도 상당히 돈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었죠. 대략 1500만불(?!) 정도 들어간 작품[각주:5]이니까요. 다 합쳐서 이득을 보기는 했는데, 이 괴물 영화의 걸작은 아쉽게도 인지도 면에서는 좀 묻혀있는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왜냐면 같은 연도에 ET 가 개봉을 했거든요!(.....) 한 쪽은 정신교감을 하는 외계인과의 드라마였다면, 다른 한쪽은 그로테스크한 신체강탈자 이야기라니! 물론 ET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솔직히 ET에 묻힐만한 그런 존재감 없는 작품은 아니었어요. 개인적인 사견을 좀 덧붙이자면 존 카펜터의 괴물은 아마 이 장르를 모두 통틀어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The Thing의 이야기와 장르는 '신체강탈자'라는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를 모태로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밌게도, 기존의 신체강탈자 류와 다른 관점으로 공포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The Thing입니다. 기존의 신체강탈자(Body Snatcher물)이란 1950년대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미국 사회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비밀스럽게 자신들끼리 모여서 사회를 전복시킬 음모를 꾸미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 부류로 개종시키고, 그리고 아무도 그 위협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각주:6] 하지만, The Thing은 상당히 다른 각도에서 신체강탈자에 대해서 접근합니다. 첫번째로, The Thing의 그것은 절대로 사교적이지 않습니다. 어딘가 어두운 골방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붉은 글씨로 '위대하신 김일성-김정일 수령 아바이 동지 만세!' 이딴 기치를 걸어놓지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The Thing의 그것은 포식자입니다. 그들은 먹잇감을 사냥하고, 복제해서, 그 안에 숨어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를 끝없이 반복하죠. 오로지 그들만 남을때까지요. 그리고 그것들은 생겨먹은 구조자체가 인간과 다르게 생겼으며, 개종은 전혀 우아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한 접촉만으로도 그것들은 전염될 수 있으며, 아무도 자신안의 그것이 깨어나지 않는한 누가 그것이고 누가 우리편인지 모릅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무엇을 했고, 어떤 동선을 취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넌 괴물이다!' 이런 식의 머릿싸움과 눈치싸움이 서스펜스를 형성하는 주된 장치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존 카펜터는 이러한 장치를 모두 제거합니다. 영화는 중반까지 괴물의 존재를 암시로만 드러냅니다. 폐쇄된 환경, 불안감을 조성하는 조성하는 카메라 워크, 신경을 긁는 효과음을 통해서 사건이 터질듯 말듯 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리고 괴물의 정체와 특징을 모두가 알게 된 순간, 그 장면에서 모든 인물들이 깨닫습니다:때는 너무 늦었다 라구요. 원판 버전 The Thing은 이 장면과 마지막 장면[각주:7]이 영화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드러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바로 괴물일 수 있다는 것. 심지어는 자신이 괴물인지 아닌지, 그조차도 모르는 끔찍하고도 끝이없는 불신과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영화를 지배합니다. 


존 카펜터는 영화 내에서 완벽하게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도대체 누가 괴물인가? 그로테스트한 괴물의 이미지와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불신과 절망감은 놀라운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발악하는 주인공과 그 일행의 사투 때문에 더욱 처절합니다. 그에 비해서 2011년도 The Thing은 상당히 온건한 노선을 걷습니다. 물론 온건하다는 것은 '원작에 비해서' 이지만요. 기본적으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원판 The Thing과 달리, 이번작에서는 믿을 수 있는 '주인공'이라는 중심축이 생기면서 절망과 공포의 이야기는 상당히 완화된 느낌이 듭니다. 사실, 2011년판 The Thing은 상당히 온건한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이, 기존의 1982년 원판 그대로의 이야기 구조를 따르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2011년 판은 원판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데, 1982년 판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 그 때 당시 사용했던 소품이나 분위기를 그대로 사용하려 하죠. 심지어 괴물의 디자인도 1982년판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합니다. 애시당초에 2011년판 The Thing은 원판을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한 작품입니다. 게다가 마지막의 깜짝 보너스 장면은 원작 팬들이라면 좋아할만 합니다.[각주:8]


결론적으로 The Thing은 1982년판, 2011년 판 모두 훌륭한 작품입니다. 물론 괴물 영화와 호러영화,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을 쉽게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죠.





  1. 가끔식 유명배우들이 특이한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는걸 많이 볼 수 있는데, 리암 니슨이 다크맨(샘 레이미 감독)에 나왔다던가, 샘 닐이랑 로렌스 피셔번(매트릭스의 모피어스) 이벤트 호라이즌에 나왔다던가 등등... [본문으로]
  2. 아주 어렸을 때, 비디오에 녹화해놓고 내용을 외울때까지 본게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플라이의 후속작 플라이 2...역시 호러 꿈나무는 조기교육부터 틀렸군요. [본문으로]
  3. '담배자국' 리뷰는 http://www.typemoon.net/bbs/board.php?bo_table=review&wr_id=31099&sfl=&stx=&sst=wr_hit&sod=asc&sop=and&page=13 이걸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상하게 거기에만 쓰고, 여기에는 안 옮겨놨네요. 프로라이프는 구해는 놨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본문으로]
  4. 한국 제목은 '괴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괴물은 뭔가 어감이 살지 않고..그냥 리뷰에서는 The Thing으로 통일하겠습니다. [본문으로]
  5. http://www.imdb.com/title/tt0084787/business [본문으로]
  6. 이렇게 적고 보니까, 진짜 우리나라 빨갱이 혐오증과 똑같군요(.....) [본문으로]
  7. 기지를 폭파하고 살아남은 주인공 멕크레디가 괴물일지 아닐지 모르는 동료와 함께 앉아서 조용히 아침을 기다립니다. [본문으로]
  8. 스포일러! 살아남은 라스가 헬기를 타고 개의 모습을 한 괴물을 추격하는데...명백한 1982년 판 오프닝 시퀸스로 이어지는 부분. 즉 2011년 판은 '프리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