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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대중문화

[리뷰]제인 에어




 샬롯 브론테 소설, 제인 에어는 상당히 독특한 소설입니다. 페미니즘 작품의 효시로 분류되면서도 동시에 신데렐라 스토리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 상당히 모순적인 구조를 보여주죠. 제인 에어는 이성적이면서 기존의 권위에 반항적인 여성이지만, 동시에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못했던 불운한 과거를 지닌 여성입니다. 예쁘지도 않지만 남성 위주의 권위적 사회에 대해 당돌한 태도를 지니는 그녀가 자신의 행복을 로체스터라는 외부의 존재로부터 찾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모순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인 에어는 여러차례 영화화 되었지만, 그러한 모순점에 대해서 상당히 취약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2011년에 만들어진 제인 에어는 이러한 모순점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다루어야 하는 논점이 있습니다.

 흔히, 제인 에어를 표현할 때, 권위에 저항하는 신여성적인 모습을 강조합니다. 소설 전반에서 다루고 있는 제인 에어의 매력은 권위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외모를 지니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분이나 직위, 사회적 권위를 뛰어넘어서 당돌한 태도를 지닌 제인 에어를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평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여성이라도 깨어있으면 어떤 지위나 어떤 외모를 지녀도 제인 에어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소설의 절반만을 해석한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제인 에어의 사랑입니다.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제인 에어의 이야기 구조는 대단히 모순적으로 보입니다. 남자에게 당돌한 여자가, 남자와 결혼하여 예속된다라는 모순적인 구조를 취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의미 심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할 점은, 제인 에어의 러브 스토리는 제인 에어로부터 시작되는게 아니라 로체스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에게 반했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알다시피, 제인 에어는 예쁜 여자하고 거리가 멀며, 신분이나 재산, 그리고 남자나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그당시의 이상적인 여성상하고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런데, 로체스터는 그녀에게 끌리죠. 영화나 소설은 그러한 로체스터의 기이한 끌림에 대해서 많은 설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몇몇 맥락에서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에게 끌리는건 명확한 실체를 가집니다.

 먼저, 로체스터는 원래 아내이자 미쳐버린 정신병자, 버사 메이슨을 자신의 저택에 가두어놓고 있죠. 그러나, 로체스터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정신병원이 아닌 자신의 곁에 두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버사가 저택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할때, 로체스터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다시 불타는 저택으로 뛰어들죠.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와의 결혼을 통해서 자신을 구원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몇몇 사건들을 통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에게 끌리는 것은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닙니다.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를 사랑한 것, 그리고 제인 에어로부터 자신의 '죄'를 구원받고자 한 것은 로체스터의 눈에는 제인 에어와 버사 메이슨이 서로 닮은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과거의 당돌하고 세상에 대해서 열린 시각을 가졌던 페미니스트 버사 메이슨을 사랑했기에, 미쳐버린 그녀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버사 메이슨의 분신인 제인 에어로부터 구원받고자 한 것입니다.

 만약, 그 시대가 버사 메이슨, 페미니스트를 미치게 만들었거나, 혹은 페미니스트를 '미친년' 취급했다면, 도대체 소설 속에서 무엇이 제인 에어를 제정신으로 붙잡고 있을까요? 영화는 대답을 제인 에어의 불행했던 인생에서 찾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서 정당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죠. 그녀의 부모가 죽은뒤에 친척 집에 맡겨졌을 때도, 그녀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그녀가 로체스터에게서 떠난 뒤에 목사 집에서 묵었을 때도, 모두 그녀에게 정해진 역할로서의 여성 모델을 강요합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정열은 제한을 받죠. 하지만, 그녀가 로체스터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변하게 됩니다. 정열에 대해서 눈뜨는 거죠. 그녀가 여성의 누드화를 보러 나오는 장면이나, 그녀의 그림 그리는 모습 등등에서 그러한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제인 에어가 버사 메이슨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바로 자기 자신이 그러한 정열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인 에어가 처음 로체스터에 대해서 갖는 미묘한 거리감이나, 로체스터의 사랑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모습은 그녀의 정열보다 그녀의 이성이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죠. 하지만, 그녀가 로체스터의 비밀, 버사 메이슨을 알게 되고 로체스터를 떠났을 때, 이성적으로든 정열적으로든 자신과 같은 신여성이 있을 곳은 로체스터 곁밖에 없다는 걸 결국 알게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상당히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다양한 곳에 숨어있는 복선들이나, 인물의 위치, 소리, 소품들을 사용해서 감정적인 이야기를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러한 소설 원작의 영화들이 어느정도 표현이나 주제의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판 제인 에어는 그러한 문제를 훌륭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질적으로 러브스토리라는 점에서는 기존의 영화들과 같지만, 2011년판 제인 에어는 다른 제인 에어 영화들과 차별되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기회가 되면 꼭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