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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대중문화

이번에 나온 스파이더맨 : 백 인 블랙



별 생각 없이 봤는데 의외로 볼만하고 흥미 있는 설정이 많네요.

특히 후반부의 시리즈 내에서 꾸준히 스파이더맨에게 호의적이었던 로버트슨 편집장의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다 란 사실은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일이었다.' 란 발언이 주목할 만 합니다. 스파이더맨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암묵적으로 모른 척 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고, 또 몰랐던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몇십 년 동안 위태위태하면서 가까스로 정체가 숨겨졌다는 사실을 아는 현실 세계의 독자의 입장에서는 헛소리로 들릴 법한 발언입니다만... 적어도 이 타이틀 내에서는 이 떡밥에 대한 복선을 계속해서 깔아두고 있습니다. 피터가 변장을 하고 있을 때도 지인이라면 금방 알아차린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건 스파이더맨의 정체 공개 이후에 지인들이 보여준 반응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시빌워 본편에서는 JJJ 가 놀라서 쓰러진다든가, 플래시가 이 사실을 안 믿는 반응은 조금 맥락이 다르지만 스파이더맨 본편의 이슈에서는 주변 인물들이 이 사실에 경악하는 모습이 나오지가 않죠.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나 놀라움보다는 피터에게 안쓰러움이라든가 미안함, 혹은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JJJ나 플래시도 스파이더맨 본편 시리즈에서는 시빌워 본편과 다르게 반응합니다. (놀라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데 이 사람들은 피터의 지인이라기보다는 주변인에 가깝습니다.)

그럼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게 무엇이냐 하니... 피터는 본인도 몰랐던 사실이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호의와 배려를 받으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여러분의 선량한 이웃' 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고 해야 할까요. 언제나 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이고 이중신분 문제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꼬이기만 할 줄 알았던 피터 파커가 사실은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거죠. 이 타이틀 초반부는 정말 이런 불행한 남자가 있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불쌍하지만, 중후반부에 그를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도와주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피터 파커 이 친구가 국내 넷상에서 너무 불행 속성으로만 찍히는 게 좀 그렇습니다. 물론 코믹스 역사상 이렇게 안습한 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지리 불행하고, 궁상맞은 삶을 산 놈이긴 하지만, 이 친구의 매력은 그런 불운에 굴하지 않고 성장해 가는 모습에 있다고 보니까요. 자신의 불행을 자조하면서도, 항상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친구인데 스파이더맨 = 그냥 불행하다. 란 공식으로 이미지가 잡혀 가는 모습이 조금 안타깝습니다.

......이긴 한데 어차피 원모어데이로 시리즈 전체 설정이 바뀌었으니 이제 아무래도 상관 없으려나. 으하하. 죽어라마블

p.s 우습게도 이 작품은 국내에 정발된 스파이더맨 관련 코믹스에서 가장 스파이더맨의 유머 감각이 빛나는 책입니다. 타이틀 자체가 암울한 이 작품이 가장 그의 오랄 솜씨가 돋보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군요.(...) 물론 메이 숙모의 생사와 관련된 심각한 장면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만 중후반부에 지인들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웃긴 장면들이 만습니다. (사건 자체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막장 전개가 많지만. -_-;) 특히 샌드맨과의 만담 콤비는 진짜 보는 내내 히죽히죽 웃으면서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