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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대중문화

엑스멘 퍼스트클래스 (X-MEN : FIRSTCLASS) 감상. 너무 큰 기대를 가졌나.

 


(스포일러 포함한 두서 없는 감상입니다.)

 개봉한지 5일쯤 지난 뒤에 엑스멘 퍼스트클래스를 보고 왔습니다. 원래 저는 초능력자 나오는 (...) 장르물이라면 왠만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바로 개봉 당일 가서 보는 사람입니다만 (특히 미국 만화 원작을 기반으로 한 슈퍼 히어로물이라면), 이제서야 본 것은 약간 바빴기도 했지만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서였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았지만 개봉한 날 '어, 이게 개봉했네' 란 반응이었죠. -_-;  엑스멘 원작 팬이 아니기도 하고 (관련 지식은 국내 정발된 작품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님), 2편 이후부터 시리즈에 별 재미를 못 느껴서 그런지 한 번쯤은 보기야 하겠지만 거의 의무감에서 볼 듯한 그런 작품, 그게 엑스멘 퍼스트 클래스였습니다. 

 그런데 개봉된 뒤에 반응을 대충 살펴 보니 호평 일색이더군요. 사소한 스포일러가 신경 쓰여서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시리즈 최고 작품이라는 말까지 심심찮게 흘러 나오고 말이죠. 4월달에 토르를 굉장한 미묘한 느낌으로 봤던 터라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처음보다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본 소감은......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가졌나 봐요. 분명 재미는 있고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결과물을 뽑아낸 양작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저에게는 뭔가 아쉬운, 딱 2 % 부족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는 1편의 오프닝 시퀸스와 비슷한, 2차 세계 대전 때의 유태인 수용소의 소년 에릭으로부터 시작하면서 시리즈의 팬들은 여기서 '아, 이 작품이 엑스멘 시리즈의 프리퀼이군.'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영화 본편의 내용만 따진다면 이전 작품들과 충돌하는 설정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그렇다면 이 작품이 전작과 완전히 동떨어진 리붓 작품이냐고 생각하기도 그런게 중간에 무려 시리즈 최고 인기 캐릭터의 전담 배우이신 그 분 (!) 께서 등장하십니다. 영화 시리즈 내에서 이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과 오프닝 시퀸스 등을 생각해 본다면 제작진은 어떻게든 연결 고리를 만들고자 한 것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그럼 충돌하는 설정은? 그냥 시리즈가 계속됨에 따라 과거가 새로 쓰이는 원작 코믹스의 세계관과 비슷한 걸까요, 아니면 그분의 인지도가 너무 높아서 리붓 시리즈에서도 계속 출현시키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나올 작품 중에 오리진 2도 있었군요.)후속작이 나와 봐야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영화는 에릭과 찰스, 시리즈의 전체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시점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됩니다. 아직 뮤턴트, 돌연변이란 개념 자체가 확립되지 않은 세계에서 이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고, 힘을 합치며, 어떻게 갈라져 프로페서 X 와 매그니토가 되는 건지가 영화의 내용입니다. 그 와중에 엑스멘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뮤턴트 특수부대의 존재가 등장하고요. 원작의 인기 캐릭터들이 새롭게 해석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아' 라고 할만한 장면들이 몇 개 들어 있고, 원작의 팬이라면 웃을 수 있는 설정이 덤으로 낀 건 당연한 공식이겠죠. 시리즈의 프리퀼, 혹은 초기작에 위치한 작품이니만큼 능력자들은 아직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같은 능력자끼리의 접촉과 협력에 의해 조금씩 그것을 개화해 나갑니다. 도중에 벌여지는 능력자들의 묘기 경연대회와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각성의 순간은 일종의 뻔한 클리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왕도적인 전개입니다. 완급 조절도 훌륭해, 그들이 포지션을 찾아가는 중반에서부터 점점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최후의 전투에서는 속된 말로 포텐이 폭발합니다. 일종의 쾌감마저 느껴질 정도의 몰입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해서, 개인적으로 그 이전까지는 지루함을 느낄 정도로 몰입을 하지 못하겠더군요.  시점이 휙휙 지나가면서 캐릭터들은 그야말로 사건 전개를 쫓아가기 바빠 보였고 관객의 흥미를 돋우는 요소와 자잘한 장면들은 보기가 힘듭니다. 아예 없지는 않은데 아마도 원작의 팬들이 가장 뜨악했을 듯한 찰스 자비에와 레이븐의 이색적인 관계도 그 중에 포함될 겁니다. 혈연 이상의 동질감을 공유하는 의여동생을 아끼는 오빠 찰스와 그런 오빠를 오빠로만 바라보지 않는 의여동생 레이븐... 이란 관계인데 이 무슨 재패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이란 말입니까.(....) (설마 진짜로 원작에서도 이런 설정이 있는 건 아니겠죠? 있으면 전 그냥 데꿀멍.ㅠ) 그러나 이 설정은 어느 정도의 가벼운 맛뵈기만 보여줄 뿐이지 심화된 감정선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관계는 이후 비스트-레이븐의 연애노선으로 바뀌어 레이븐은 자신만의 고뇌와 고민을 계속하게 됩니다. 심화되었으면 심화된 데로 문제가 될 요지는 있어 보이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예정된 결별을 진행하는 레이븐과 찰스의 모습은 지나치게 담백하다 못해 구 시리즈 작품과 충돌하는 이런 설정을 제작진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넣은 것일까라는 의구심마저 품게 합니다. 차라리 도중 비스트와의 연애 노선을 더욱 강조시켜서 처음부터 비스트와의 인연으로 만들었든가, 아니면 아예 그 부분을 삭제시키고 찰스와 레이븐의 관계에 집중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듭니다. 어떻게든 많은 캐릭터들을 살리려고 한 제작진의 노고는 보이지만 말이죠. 제 취향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에서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초반부에서 볼 만한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에릭의 섬뜩한 복수심입니다. 술집 장면에서 감탄한 사람은 저만은 아닐 거라 생각해요. 나치스와 인간에 대한 증오로 뿜어내는 독기 어린 모습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 친구가 이후 시리즈의 주인공들의 적대자인 매그니토가 되는 건지 단적으로 보여주죠. 매그니토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보여줘야 하는 모든 과정들을 다 거치고 있습니다. 유년 시절에 있었던 괴로운 과거와 트라우마, 거기에서 비롯된 그의 행동원리, 이에 대한 정당성과 명분을 보여주는 인간들의 끝임 없는 어리석고 추악한 모습, 복수를 하다가 만나게 된 일생의 친구이자 대적자, 그의 멘토링과 교감을 통해 이루어 내는 정신적인 성장과 자아의 복수심 이상의 목적의 발견, 그리고 마지막 능력의 각성까지. 덤으로 자신의 본모습으로 방황하는 여주인공을 있는 긍정하고 받아 주는 멋진 모습까지. (그 이유과 관대함 때문인지 와집인지, 아니면 개인의 취향-_-;인지는 둘째치더라도.) 주인공으로서 완벽하지 않습니까? 예, 이 영화는 매그니토가 주인공입니다.

보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원래 이 영화는 매그니토 : 오리진의 기획이 발전된 영화였다고 하더군요. 에릭이 이런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에릭- 매그니토와 대립하게 되는 찰스 자비에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평면적이란 것입니다. 엑스멘의 전신이 되는 뮤턴트 팀의 지도자이자 멘토로서 이야기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그이지만, 매그니토와 대치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서 그는 글쎄요? 너무 밋밋하고 매력 없어 보입니다. 찰스에게는 왜 그가 인간과의 공존을 갈구하는 평화적인 지도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나, 그에 대한 신념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배당되어 있지 않습니다. 굳이 에릭처럼 과거 장면을 넣지는 않았어도 그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은 있었어야 했습니다. 영화의 전개가 가속되어 가는 중반부에서 후반부까지는 그는 그저 에릭과 뮤턴트 팀에 대한 충실한 멘토일 뿐입니다. 분명 이야기의 전개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에릭과 비교해서는 뭔가 부족한 주인공이 된 거죠.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뮤턴트와 대면하게 되는 인간이 참으로 일관적으로 더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 에릭의 입장을 지지하고 그에 대해 몰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찰스는 막연한 이상주의자, 심지어는 단순한 정치적 보수주의자로까지 보입니다!  한국식으로 풀이하자면 제작자들은 일제 시대의 독립운동사를 영화로 만들면서 일본인들의 잔악한 모습만 주구장창 보여주고는 과격한 테러 운동을 주도하며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하는 독립운동가와 보다 온건한 방법으로 평화적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는 독립운동가, 2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격입니다. 이중 어떤 인물이 더 인기를 끌고 몰입하기 쉽겠습니까? 작중에 등장하는 뮤턴트들은 설정상으로은 인간과 다른 종이기는 하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약간 괴상하지만 초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뮤턴트들이 비스트를 능가하는 추악한 비주얼을 가지게 되더라도 인간적인 고통과 고뇌를 드러내는 그들에 몰입하게 되지, 시종일관 그들을 핍박하는 영화 속 인간의 편을 들까요? 일관적으로 추악하고 적대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인간을 옹호하는 찰스의 입장은 에릭에 비해 취약해 보입니다. 그걸 보강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인간 중 유일한 개념캐라할 수 있었던 모이라의 로맨스였는데 영화에서는 그 과정을 모조리 생략하고 말 한 마디 언급되더니 키스 한 번 하고 끝나더군요. -_-;  반대로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뮤턴트 레이븐-미스틱과의 관계에서 찰스는 자신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도 있었으나 그 또한 상기했듯이 슬며시 지나갑니다. 

 어쩌면 제작진들은 에릭과의 관계에서 찰스의 캐릭터가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대립 구도만큼 각 캐릭터들의 성격을 비교해서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들의 끈적끈적함 에릭에게 너무 추가 몰려 있습니다. 원래부터 수세적인 입장에 놓여 있는 찰스는 자신의 캐릭터를 선명히 드러내기 위해선 강한 독자성을 가졌어야 했는데 에릭에 대한 멘토링과 뮤턴트 팀의 능력개발에 시간을 다 써버립니다. 모이라와의 관계는 묘사조차 안 되고요. 이 와중에 그의 여동생은 그의 선을 긋는 태도에 낙담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긍정해 주는 에릭 쪽으로 스탠스를 바꾸고요. 이 영화는 레이븐의 고뇌에 대해서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도 최종적인 포커스는 에릭-매그니토에게 맞추어 집니다! 원래부터 예정된 결말이었다지만 에릭과 찰스의 대립 구도는 다시 한 번 에릭쪽으로 추가 기웁니다.

 매그니토가 주인공이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찰스의 입장이 매그니토에 비해 미묘하다는 사실이 영화가 수준 저하 문제로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엑스멘 : 퍼스트클래스' 란 타이틀을 취하는 대신 '매그니토 : 오리진'이란 원 기획을 밀고 나갔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매그니토의 캐릭터는 확실하게 살린 대신 이 영화는 인간을 지키기로 결심한 찰스와 그를 지지하기로 선택한 최초의 엑스멘들에 대한 조망이 너무 부족합니다. 양쪽의 선택과 갈라짐에 대한 주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켰더라면 괜찮지 않았을 거란 아쉬움이 계속 듭니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시리즈의 후속작이 나오면 그냥 해결되는 부분일지도 모르겠군요. 다크나이트의 존재로 배트맨 비긴즈의 가치가 더욱 올라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의미로서의 엑스멘 : 퍼스트클래스 (익히 이름을 알만한 주요 멤버들의 초창기 모습이 나오는, 사실 타이틀도 이런 내용이었는데 말이죠.) 의 후속작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p.s 사실 정말로 까고 싶었던 부분은 마지막 미사일 포격 장면. 핵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일보 직전이었는데 우월하신 매느님이 힘 한 번 쓰자 단결해서 공격하는 모습은 좀 어이가 없더군요. -_-; 마지막에 비장한 각오로 '여러분과 함께여서 영광이었다'란 대사를 날린다든가 결국엔 살게 되어서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은 골계미까지 느껴질 정도.
 
p.s 2 입대한 이후 보게 된 슈퍼 히어로물 (아이언맨2, 토르, 퍼스트클래스) 이 하나 같이 크게 감흥이 없어서 내가 영화 보는 눈이 바뀐 건지 의심이 들 지경. 현재로서는 곧 있으면 개봉하는 그린 랜턴에 대한 기대치는 땅까지 떨어진 상태.(...)